회사와 일상,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일까?
현대인의 대부분은 회사와 일상생활에서의 모습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곤 한다. 내 진짜 모습은 이렇지 않은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사실 이 간극은 새로운 본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호에서는 회사에서 보여지는 나와 일상 속 나의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나답지 않음 = 발전 가능성의 신호!
“이건 제가 아니에요.”, “저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요.”, “지금 제 모습, 저도 낯설어요.” 직장인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들입니다. 낯설고 어색한 자신의 모습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상태를 ‘비정상’이라 여기며 회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상담사로서 저는 이 순간이야말로 자기 이해와 성장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나답지 않은 상태’ 는 대개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나’의 가능성과 마주할 진귀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직장이라는 공간은 우리가 ‘나답게’ 행동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조직의 요구, 상사의 기대, 동료와의 긴장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역할에 맞는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역할이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거나, 너무 무겁게 부과될 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곧 내면에서 멀어진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저, 이 일에 왜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요?”, “예전엔 참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자꾸 욱하게 돼요.” 이런 질문들은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사실 매우 중요한 신호입니다. 우리는 이런 감정을 무시한 채 익숙한 역할에만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곤 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회피하면 자기모순에 점점 익숙해지게 되고, 결국 자기 소외로 이어집니다. ‘나답지 않음’은 나쁜 게 아니라, ‘지금의 나’와 ‘진짜 나’ 사이에 간극이 생겼다는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따라가 보면, 거기에는 늘 새로운 자신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MBTI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기를!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설명할 때 MBTI를 떠올립니다. 성격을 몇 글자로 요약해 보여주는 이 도구는 유행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언어처럼 쓰이고 있죠. 자기소개 시간에 MBTI 유형이 등장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MBTI는 사람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분명 유용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도구가 때때로 자기 이해를 고정시키고, 성장의 여지를 닫아버리는 틀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T니까 감정 표현 못 해, 이해해줘”, “ISTJ는 노잼인거 알잖아” 이런 식의 자기합리화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확장할 기회를 놓치게 만듭니다. 사실 MBTI의 근간을 만든 심리학자 칼 융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아닌지를 깨닫고’, 자신의 반대 성향을 통합해 가는 성숙의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본인이 ISTJ라면 ENFP를 지향하고 자신의 것으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조금 낯설고 불편한 나에게 한발 다가서기
직장은 우리의 다양한 자아를 시험대에 올리는 공간입니다. 조용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직원이 팀 리더가 되어 팀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하고, 상사와의 면담에서 “왜 이렇게 수동적이냐?”는 피드백을 듣기도 합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낯설고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죠. “나는 이런 것 체질적으로 안 맞아?”, “이런 모습은 나답지 않아.” 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바로 이 순간, 익숙한 역할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과 마주할 때 시작됩니다. 우리는 흔히 ‘진짜 나’를 고정된 무엇으로 생각하지만, 인간의 진정한 실존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존재로서의 자기입니다. MBTI로 비유하자면, 편안하고 익숙한 자리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마치 ‘ISTJ 절반의 삶’만 살아가는 셈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 말에는 종종 우리를 제한하는 기준이 함께 따라붙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제가 자주 확인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진짜 나는 내가 정해둔 좁은 정의보다 훨씬 더 넓고, 깊고, 다면적인 존재라는 것.’ 조금 낯선 당신이, 사실은 더 진짜일 수 있습니다. 지금 느끼는 불안, 충돌, 지침은 ‘나답지 않음’ 때문이 아니라 이제야 진짜 나를 만나기 시작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MBTI든, 과거의 경험이든, 지금의 역할이든 그 무엇도 당신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단정 짓지 말고, 조금 낯설고 불편한 나에게 한발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요?
설진미 삼정KPMG 전임 심리상담사
성균관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고려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으며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임상심리실에서 슈퍼바이저로 경력을 쌓았다.
현재는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10년간 일하며 심리상담, 조직컨설팅, 강좌 및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개발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조직에 속한 직장인들을 만나 삶의 불안과 고통, 갈등을 성찰하고 성장을 모색해 왔으며, 조직문화를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