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 Care

최근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342명을 대상으로 ‘번아웃 증후군 경험’을 주제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직장인 69.0%가 과도한업무량과 직장 내 인간관계 스트레스, 반복되는 업무, 업무 능력의 한계, 성과 압박 등의 이유로 한 번쯤은 번아웃을 겪는다고 한다. 문제는 번아웃이 직장 스트레스로 흔한 증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번아웃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자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요즘 집중력이 없어서 ADHD가 아닌가 싶어요”, “자꾸만 잠이깨고 잠들기 어려워요”, “요즘 두통이나 소화불량을 달고 살아요”,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요”, “자존감이 바닥이에요” 등의 호소는 번아웃을 의심케 한다. 이 순간 바로 되묻는다. “최근에 주 몇 시간 일하셨나요?”, “혹시 직장에서 압박감을 느끼는 일이 있었나요?”, “주말에는 직장을 잊고 쉴 수 있었나요?” 이 질문의 답을 듣다 보면, 탈이 안 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심지어 번아웃을 넘어서 우울증이 의심되기도 한다.

사실 번아웃은 하루아침에 찾아오지 않는다. 이 증상을 겪는 분들은 Chance(1981)*가 말한 4단계를 거친 분들이 많았다. 첫 번째는 모든 일에 열심이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일을 즐기고 동료/상사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며 자신의 능력에 긍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일하는 즐거운 단계이다. 두 번째는 침체되는 단계로 열심히 일을 해도 성장이나 발전이 없다고 느낀다. 세 번째는 욕구 좌절의 단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다들 노력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마지막으로 무감각해지는 단계로 업무는 벅차고 흥미는 오래전부터 떨어지고, 더 이상 주변에 관심이 없어져 자신에게만 주의를 기울이는 시야가 굉장히 좁아진 단계이다. 다들 어느 단계에는 속할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원치 않는 증상을 겪으면, 이를 문제 삼고 없애려는데 집중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증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번아웃의 어원인 ‘burn out’은 ‘완전히 타버리다’, ‘기진맥진하다’, ‘탈진하다’ 등을 뜻한다. 마치 장작이 불에 활활 타버린 재만 남은 상태처럼, 마음도 과부하가 걸려 셧다운된 상태를 의미한다. 더 열심히 하고자 해도 소용없는 무기력한 상태이다. 이런 의미에서 번아웃 증후군은 무기력감이 핵심 감정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마음의 메시지다.

직장인이 무기력해지면 흔히 자꾸만 업무 중 딴짓을 하게 되고, 주말에는 누워만 있고 싶고, 시작하는 것이 힘들어지며, 쉬어도 쉬어도 누워있고만 싶어진다. 이러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은 당황하고 자신이 게으른 사람이라고 자책하며 불안해한다. 그러나 답은 간단하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 당연한 사실을 잘 모른다. 우리는 한동안 100k m 속도로 달린다. 그러나 여기서 착각한다. 계속 이 속도로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빠른 속도로 지쳐서 70km로 속도가 느려졌는데도, 오히려 느린 속도에 책망한다. 왜 100km 속도로 못 달리지? 자동차라면 계속해서 종전 속도로 달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사람이다. 과속 후에는 피로해지고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직장인들 중에는 자신도 한낱 인간임을 받아들이지 못해 계속 100km를 유지하려고 한다. 주로 카페인을 의존하지만 카페인은 무기력감을 더 악화시킨다. 일시적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피곤에서 벗어나게 하지만, 과도하게 에너지를 쓴 만큼 주말에 무기력함을 더 경험하게 한다. 결국 탈이 난다. 번아웃의 신호는 더 이상 그 속도를 달릴 수 없다는 경고이다.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신호다. 누구나 일시적으로 겪을 수 있다.

번아웃으로 무기력을 겪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일단 무기력함을 온몸으로 느껴보라. 얼마나 격렬하게 아무 일도 하기 싫은지, 그동안 얼마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둘러싸여 왔는지, 몸이 뻐근하지, 얼마나 오랫동안 긴장하며 일을 해왔는지 자각해보라. 일이 잘못될 까봐, 내 몫을 못 해낼 까봐, 내가 실력이 없는 사람일 까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조바심으로 늘 긴장되었던 자기를 살펴보라. 그동안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해 왔는지 되돌아보자. 매일 전투 같은 일상을 멈출 힘은 없지만, 잠시 멈추는 것 자체에 자책감을 느끼지 말자.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말하는 자신에게 게을러 졌다고 비난하지 말자. 오히려 무기력이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느껴보고 그 증상을 이해해보자. 이대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있다는 무기력의 언어를 받아들여보자.

번아웃 증후군의 많은 솔루션들이 무기력을 벗어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무기력감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무기력한 상태를 못마땅해하고 그것을 회피하거나 통제하려는 시도가 더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 마음은 용수철과 같다. 힘든 감정이나 상태를 억제하고 회피할수록 그 압력은 더 강해진다. 오히려 무기력과 싸우기보다 무기력한 상태를 이해하고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 비로소 그동안 착취해 온 자신에게 물어보자.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때로는 휴식일 수도 있고, 때로는 ‘수고했다’는 인정의 한마디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이를 해줄 때 진정한 휴식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