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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넘기고 있는데도 머릿속에서는 오후 회의가 다시 재생되고, 답장하지 못한 메일이 떠오르고, 내일 보고가 미리 걱정된다. 몸은 분명히 쉬고 있는데 어쩐지 하나도 개운하지 않다.

      많은 직장인이 이 장면에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는 의지나 체력이 아니라, 뇌가 아직 ‘업무 모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우리 뇌에는 외부의 일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더 활발해지는 회로가 있다. 뇌 영상 연구자들은 이것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이하 DMN)라고 부른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 연구자들조차 놀랐다. 사람에게 과제를 시키면 특정 영역의 활동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려갔고, 반대로 멍하니 쉴 때 그 영역들이 다시 켜졌기 때문이다. 뇌는 결코 꺼지지 않으며,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야말로 뇌의 기본 설정값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드러났다.

      DMN의 정체성은 위치보다 작동 방식에 있다. 바깥일에 주의를 쏟는 회로(과제 집중 회로)와 DMN은 시소처럼 움직인다. 일에 몰입하면 DMN은 내려가고, 일에서 손을 떼고 안으로 향하면 DMN\이 올라온다. 그래서 DMN이 켜질 때 뇌가 하는 일은 지극히 ‘나’와 관련된 것들이다. 나에 대한 생각, 지난 일의 회상, 다가올 일에 대한 상상,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 

      여기서 핵심적인 반전이 있다. 퇴근 후 머릿속이 시끄러운 이유는 DMN이 꺼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DMN이 켜졌는데 그 내용이 부정적인 곱씹기, 즉 반추(Rumination)로 흐르기 때문이다. ‘아까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내일 또 그 일이 반복되면’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무는 상태다. 실제로 우울에서는 DMN이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과하게 연결되는데, 이것이 부정적 반추와맞물려 있다는 것이 임상 연구들의 일관된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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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분리는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훈련으로 키울 수 있는 기술이다. 뇌의 작동 원리에 맞춘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① 업무 알림을 ‘물리적으로’ 끊는다: 퇴근 후에도 업무 메일과 메신저를 확인하는 습관은 단순한 번거로움이 아니다. 한 직장인 대상 연구에서는 퇴근 후 업무 메일 빈도가 높을수록 심리적 분리가 잘 안 되고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 알림 한 번이 업무 집중 회로를 다시 켜고, 그때마다 DMN의 회복은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업무 앱 알림을 끄거나 계정을 분리하는 작은 경계 하나가 뇌에는 ‘퇴근 신호’가 된다.

      ② 걷기나 자연 속에서 '좋은 멍 때림'의 시간을 만든다- 특히 걷기와 자연: 멍 때림이 다 같은 멍 때림은 아니다. 방 안에서 폰을 보며 곱씹는 멍 때림은 반추로 빠지기 쉽지만, 가벼운 산책이나 자연 속에서의 멍 때림은 DMN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쪽으로 작동한다. 퇴근길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기, 저녁 식사 후 동네 한 바퀴처럼 '머리를 비우되 몸은 가볍게 움직이는' 시간이 뇌의 회복 모드를 켠다.

      ③ 몰입할 거리 하나를 둔다: 운동, 요리, 악기, 그림처럼 적당한 주의가 필요한 활동은 과제 집중 회로를 ‘좋은 일'로 점유한다. 시소가 그쪽으로 기울면 반추로 향하던 DMN 회로가 자연히 잦아든다. 핵심은 ‘딴생각할 틈이 없을 정도로 적당히 몰입되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너무 쉬우면 마음이 다시 일로 새고, 너무 어려우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된다.

      ④ 하루 10분, 호흡과 마음챙김: 들숨과 날숨에 주의를 두는 짧은 호흡 연습은 떠도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는 훈련이다. 이는 곱씹기로 굳어지던 DMN의 흐름을 끊어주는, 가장 손쉬운 도구다. 거창한 명상이 아니어도 좋다. 잠들기 전침대에서 10분이면 충분하다.

      ⑤ 잠들기 전, 머릿속을 ‘바깥에’ 비운다: 불면을 겪는 사람의 뇌에서는 쉴 때 내려가야 할 DMN이 잘 가라앉지 않는다. 잠자리에서까지 생각이 멈추지 않는 이유다. 머릿속 걱정을 종이에 적어 '내일의 나'에게 넘겨두는 것만으로도, 뇌는 그 생각을 붙들고 있을 이유가 줄어든다. 잠들기 한 시간 전 화면을 끄고, 떠오르는 일거리를 메모로 비워두자.

      우리는 일하는 법은 열심히 배우면서, 쉬는 법은 좀처럼 배우지 않는다. 하지만 회복은 ‘아무것도 안 하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회로에서 분리하고 → 뇌의 기본 모드를 부드럽게 돌리고 → 다음 날 다시 몰입할 힘을 채우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오늘 저녁, 알림을 한 번 끄고 동네를 한 바퀴 걷는 것. 그 작은 선택이 당신의 뇌에게는 분명한 퇴근 신호가 된다.


      AUTHOR
      설진미 삼정KPMG 전임 심리상담사
      성균관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고려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으며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임상심리실에서 슈퍼바이저로 경력을 쌓았다.

      현재는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10년간 일하며 심리상담, 조직컨설팅, 강좌 및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개발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조직에 속한 직장인들을 만나 삶의 불안과 고통, 갈등을 성찰하고 성장을 모색해 왔으며, 조직문화를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