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상해죄’는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가해자로 규정하고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사회적 현상을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신조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왜 등장했을까? 우리는 어쩌면 점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 호에서는 ‘기분상해죄’라는 현상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심리적 여유와 관계의 의미를 돌아본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는 동료들의 뒷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불장’에서 큰 수익을 올렸다는 무용담을 늘어놓고, 또 누군가는 소외감에 휩싸여 침묵합니다. 과거에 월급은 생존의 수단이자 성실함의 척도였지만, 자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노동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초라해졌습니다. 자본 소득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많은 이들이 뒤처졌다는 불안을 안고 밤을 보냅니다.
그러나 이 현상은 개인의 부족함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공동체적 증후군에 가깝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외부 지표에 필사적으로 매달립니다. 이 열풍에 올라타지 못한 이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단순한 시기심이 아닙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허물어진 시대가 낳은 구조적 공포입니다.
경제적 서열화가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타인을 존중의 대상이 아닌 비교와 경쟁의 상대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미 구조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다는 불안에 시달릴 때, 동료의 무심한 말 한마디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나의 존재 가치를 깎아내리는 공격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런 심리가 극단화되면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기분상해죄’입니다. 법적으로 존재하는 죄목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정서적 가해자로 규정하고 문제 삼는 사회적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 논란이 단순히 예민한 개인들의 해프닝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인정할 여유를 잃어버린 사회의 심리적 결핍을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미니애폴리스 재향군인 의료센터 중환자실 간호사였던 알렉스 제프리 프레티(Alex Jeffrey Pretti)의 삶을 마주합니다. 그는 2026년 1월 24일, 근무지 인근에서 연방 이민단속국 요원들의 총격으로 숨졌습니다. 우리를 숙연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극심한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괜찮아요?(Are you okay?)”였습니다. 타인을 향한 돌봄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의 본능으로 살아 있었습니다.
그에게 배운 학생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는 가장 위중한 환자들을 돌보는 법을 내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의 빛을 안고 매 병실로 들어갑니다.” 알렉스의 삶은 노동이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고 타인을 치유하는 일임을 증명했습니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를 지키고 암 연구에 매진한 것은 ‘부의 추월차선’을 향한 조급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전문성으로 타인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 책임감이었습니다. 자산의 숫자는 끊임없이 변동하지만, 그가 전해준 지혜와 기술은 동료들의 손을 인도하며 세상을 치유하는 영구적인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알렉스의 태도는 타인을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고 격리하는 ‘기분상해죄’의 문법과 정반대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을 향한 돌봄과 수용,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과 나누는 열린 대화와 협력입니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더 높은 수익률이 아닙니다. 알렉스처럼 비극적 순간에도 “괜찮아요?”라고 물을 수 있는 심리적 여유와 연대입니다.
세상이 주식 차트의 숫자에 열광하고 성실한 노동을 비하할 때에도, 당신은 누군가의 일상을 지탱하고 조직의 신뢰를 지탱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알렉스가 가족과 동료들에게 영원한 영웅이었던 것처럼, 매일의 불안을 견디며 타인을 돌보고 자신을 수용하려 애쓰는 당신의 오늘 또한 충분히 영웅적입니다. 이제 수익률이라는 왜곡된 거울을 내려놓고, 알렉스가 남긴 마지막 질문을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보십시오.
“괜찮아요?”
성균관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고려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으며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임상심리실에서 슈퍼바이저로 경력을 쌓았다. 현재는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10년간 일하며 심리상담, 조직컨설팅, 강좌 및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개발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조직에 속한 직장인들을 만나 삶의 불안과 고통, 갈등을 성찰하고 성장을 모색해 왔으며, 조직문화를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