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경전 <탈무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인생이란 문틈으로 백마가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짧은 인생에서도 누구에게나 잘나갔던 전성기(全盛期ㆍheyday)가 있게 마련이다. 과거 톱스타 전도연은 인터뷰에서 “저는 제 전성기를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아! 그녀에겐 매일매일이 전성기였다는 말인가. 그리 보면 전성기란 쇠락에 굴복한 패배자의 언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뉘앙스는 다르지만 이 대목에서 대부분 청춘들은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떠올리게 된다. 지난 2000년 최초 개봉된 왕가위 감독의 영화로 유명해진 이 말은 한마디로 내 인생의 ‘꽃 같은 시절’을 의미한다. 직역하면 ‘꽃(花) 모양(樣)의 해(年)와 시절(華)’이란 뜻으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시절, 즉 꽃처럼 화려한 청춘의 순간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장만옥과 양조위가 주연한 이 영화는 가장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애틋하고 덧없었던 사랑의 순간을 그려내었다.
# 오래된 미래 & 새로운 현재
중요한 것은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뀌고, 미래는 결정에 따라 바뀌지만 ‘현재’는 지금 행동하기에 따라 바뀐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거(P)-현재(P)-미래(F)란 것도 깊이 생각해보면 매우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다. 예컨대 “과거는 당신 앞에 있고 미래는 당신 뒤에 있다”라는 문장을 보라. 이는 남미 인디언 부족의 속담으로 알려진 건데 서양식 시간관(미래가 앞, 과거가 뒤)과 반대의 세계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따지고 보면 오늘은 내일의 어제다. 또한 미래학자들에게 있어 미래란 새로운 현재(new reality)이다. 또한 과거란 단순히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라고도 한다. 노후(老後)가 그 중에 하나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외길이다. 지금 이 단계를 지나면 다음 단계가 온다는 것을 모두 알고는 있으나 짐짓 모르는 척할 뿐이다. 이 말은 결국 진정한 미래는 오랜 지혜 속에 있다는 의미다. 다만 “노년의 비극은 아직 젊다는 데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대부분은 “나는 아직 젊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한편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로선 대부분 과거는 아름답고, 현재는 고통스러우며, 미래는 불확실하다. 마포 대포집 벽에 붙어 있던 글귀도 인상적이다. “청년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중년은 현재를 이야기하며, 노년은 왕년을 이야기한다.”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동양학 최고봉 노자는 <도덕경>에서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고 설파하였다. 이것은 어찌 보면 고대 로마의 서사시인 호라티우스가 외친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도 일맥상통하는 통찰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내 인생 최고의 날
세계적인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스칼렛 오하라 역)는 내일 아침 먹거리조차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외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Tomorrow is another day)!” 지금 이 시간에도 반지하 단칸방에서 저 유명한 “The Best day is yet to come(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이란 글귀를 부여잡고 미래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서양 속담에는 “He who laughs last, laughs best”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 노름판에는 ‘첫끝발이 개끝발’이란 표현이 있다. 결국 오늘 잘나간다고 자만할 것이 아니며, 못 나간다고 좌절할 일도 아니다. 이하는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끈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대사다. “제 인생 요리는 제가 만드는 다음 요리죠. 예전 건 다 지나간 거고 레퍼런스일 뿐이죠. 가장 중요한 건 이 다음에 나가는 음식밖에 없어요.”
전설의 골퍼 벤호건은 골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샷은 바로 그 다음 샷이라고 했다. 많은 것을 이루고 한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성공한 노년의 대가에게 물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때는 언제였나요?” 돌아온 그의 대답은..... “내일(tomorrow)입니다.”
인기 칼럼니스트(조선일보ㆍ헤럴드경제/ 국제 PEN클럽 정회원) 및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초대형 교보 <광화문글판> 선정 작가이다. 현재 서울벤처대학원 초빙교수,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고문, 대통령직속 민주평통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유니크한 언어의 쇼츠, 「두줄칼럼」은 인문ㆍ경영의 융복합 구성으로 AI 시대 인간만의 생각 품질을 높이고 영감을 주는 지적 아포리즘 결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