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이 높은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우리는 어떻게 불안을 다루고 있을까? 최근에는 전화 사주풀이, 타로 카드 앱, ChatGPT를 통한 사주 보기 등 다양한 방식에 의존해 미래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이 과연 불안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 주는 걸까? 이번 호에서는 심리 상담가의 시선으로 ‘불안’에 대해 살펴본다.
2025년은 유난히 불확실성이 높았던 해다. 기술의 규칙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경제와 일자리의 전망은 안개 속을 걷듯 흐릿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느낀 불안은 결코 이상한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심리학자 롤로 메이(Rollo May)는 불안을 “실존과 마주할 때 느끼는 현기증”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올해의 불안은 우리가 불확실한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했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올 한 해 “나는 이 불안을 납득할 만한 ‘나만의 해석 체계’를 만들었는가?” 생활변화관측소 박현영 소장의 분석처럼, 올해 직장인들은 예년보다 훨씬 더 ‘안정’을 갈망했다. 싱잉볼, 반려 돌멩이, 타로, 운세, 종교적 메시지가 유행했고, 특히 타로 카드나 점집이 성황을 이뤘다. 그런 곳에서 듣는 말들이 있다. “올해 삼재라서 그래.”, “곧 상황이 열릴 거야!”, “이건 네 업보야. 견디면 지나간다.”
이런 문장들은 이해되지 않는 고통을 빠르게 설명해 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불안, 고통의 열기를 눈앞에서 즉시 식혀주는, 강력한 ‘즉효 진통제’다. 그 순간 우리는 “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힘들었구나”라는 안도감을 얻는다. 그런데 그 해석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내 삶 위에 덧씌운 설명일 뿐이다. 여기서 물어야 한다. 그 위안은 “내가 납득한 것인가, 남이 대신 납득해준 것인가?” 타인의 말에기대는 순간, 우리는 삶의 방향키를 천천히 외부로 넘기게 된다. 올해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그 의존이 더 깊어진다. 점집을 찾고, 권위적 대상의 답을 기다리며, “내가 맞게 가고 있는가?”라는 판단을 스스로 내려보지 못하게 된다.
실존적 성장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납득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나만의 해석 체계를 세운다는 것은 단순한 긍정이나 자기암시가 아니다. 내가 경험한 불안을 구체적인 언어로 분석하는 과정이다.
이 질문들은 불편하다. 하지만 이 불편함을 통과해야만 막막했던 감정은 구체적인 문제로, 막연한 공포는 내가 다룰 수 있는 정보로 변한다. 그 순간, 불안은 더 이상 정체 모를 해일이 아니다. 내가 다룰 수 있는 파도, 즉 ‘관리 가능한 변수’가 된다.
2025년의 불안은 결코 우리가 약해서 생긴 감정이 아니다. 그만큼 복잡하고 거센 시대 속에서 묵묵히 살아낸 결과다. 이제,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나는 올해의 불안을 이겨내기만 했는가, 아니면 불안을 납득하고 이해할 나만의 해석 체계를 새로이 만들었는가?”, “내 고통을 내가 해석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대신’ 해석해 주기를 기다렸는가?”
내 불안의 이름을 내가 붙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이유를 내가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변화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을 것이다. 흔들릴 수는 있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 참고: 2025년 이승욱 정신분석가의 [정신분석적 꿈분석 워크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