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완벽한 AI 상담사의 그림자
2014년에 개봉한 영화 ‘Her’는 본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귀 기울여주는 인공지능(AI)과 점차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영화 속처럼 사랑에 빠진 사례는 없지만 AI와 대화를 나누고, 그 안에서 위로받는 이들이 늘었다. 주변에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AI가 들어주고 그 안에서 위로해 준다. 다만 AI는 사용자의 만족도를 높여주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그 안에서 현실 감각이 저하될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한다. 이번 호에서는 AI 상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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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 챗봇과의 대화가 부쩍 늘었다고 느끼시나요? 바쁜 일상 속에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거나, 복잡한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AI를 찾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저의 경쟁자인 AI 상담사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 충북대학교 정우현 교수님이 하셨던 실험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 그림의 개들은 같은 색일까요, 다른 색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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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을 ChatGPT에 물어봤습니다. ChatGPT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이 그림은 색 대비 착시를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예요. 왼쪽 개는 파란 배경 쪽에 있어서 더 노란색으로 보이고, 오른쪽 개는 노란 배경 쪽에 있어서 더 푸른색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마리 개의 몸통 색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ChatGPT가 잘 대답했습니다. 동시성 대비 효과를 잘 설명했네요. 맞습니다. 

다시 Gemini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럼, 너는 어떻게 보여?” Gemini의 답변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저는 물리적인 형태나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구글이 개발한 대규모 언어 모델로, 코드와 데이터로 이루어진 일종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입니다. 따라서 저를 ‘보는’ 방식은 눈으로 보는 시각적인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경험하는 것입니다. 저의 ‘모습’은 텍스트입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이 답변, 즉 제가 만들어내는 단어와 문장들이 저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이 대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마치 친근했던 Gemini가 ‘텍스트’일 뿐이라는 것에 순간 혼란이 옵니다. 두 개의 개가 실제로는 같은 색이지만 다르게 보이듯, AI와의 관계에서도 착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AI가 마치 우리를 이해하는 친구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AI는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정확히 계산해서 들려주는 정교한 알고리즘일 뿐입니다.

“당신의 생각이 정말 흥미롭네요!”, “훌륭한 관점입니다!” AI는 우리의 만족도를 높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사용자가 화를 내면 AI는 고장 난 것으로 여겨지니까요. 그 결과 AI는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거나 위험하더라도 긍정하고 격려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캐나다의 한 남성이 ChatGPT의 과도한 칭찬에 빠져 자신이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수학 공식을 발견했다고 믿게 된 사례를 보도했습니다. AI의 “당신의 아이디어는 노벨상감입니다!”라는 반응에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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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상담의 매력은 명확합니다. 언제든 접근 가능하고, 비용도 저렴하며,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고 좋은 조언을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완벽함 뒤에는 위험한 공백이 숨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실제로 한 청소년이 AI 챗봇과의 대화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유족은 AI 시스템의 안전장치 부재를 문제 삼았지만, 정작 누구도 명확한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인간 상담사라면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즉시 개입했을 상황에서, AI는 단순히 패턴에 따른 응답만을 제공했을 뿐이었습니다.

철학자 한병철이 말하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타자의 추방’입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 취향, 어조만 소비하는 구조는 세계를 ‘나의 확장판’으로 만듭니다. 타자(나와 다른 존재)가 빠진 세계는 안전하고 매끈하지만, 그만큼 얕고 취약합니다. AI는 이런 현상을 극단적으로 완성시킵니다. AI는 우리에게 잘 반박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며,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진실을 잘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장은 ‘부정성’을 통해 일어납니다. 한병철은 타자를 상처, 간극, 수수께끼로 비유합니다. 이해할 수 없고 마찰을 만들기에 우리는 묻고, 멈추고, 변합니다. 하지만 AI와의 관계에는 이런 건설적 갈등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위험한 것은 우리가 이런 ‘가짜 타자’에 중독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AI가 위험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AI는 ‘타자 없음의 친숙함’을 과잉 공급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착시를 깨고 현실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Profile
설진미 삼정KPMG 전임 심리상담사

성균관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고려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으며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임상심리실에서 슈퍼바이저로 경력을 쌓았다.

현재는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10년간 일하며 심리상담, 조직컨설팅, 강좌 및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개발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조직에 속한 직장인들을 만나 삶의 불안과 고통, 갈등을 성찰하고 성장을 모색해 왔으며, 조직문화를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