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감수성에 관하여
“그 말, 30초 안에 바꿀 수 있나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혹은 직장 내에서 나눈 대화 중 무심코 상대의 외모나 능력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을까? 별 뜻 없이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별 차이로 인한 사회적 불균형을 이해하고, 일상 속에 스며든 성차별적 요소를 민감하게 인식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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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참 예쁘시네요”, “몸매가 좋은데, 운동했어요?”, “오늘따라 피부가 안 좋네”, “지금도 날씬한데 다이어트는 왜 해요”, “일은 곧잘 하면서, 혹시 지능 떨어지죠?” 이 문장들 중에서 칭찬인지 불쾌한 말인지 구분이 명확하게 되시나요? 언뜻 들으면 별일 아닌 듯 흘려보낼 수 있는 말들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잔상으로 남곤 합니다. 어떤 말은 웃으며 넘기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상처가 되고, 어떤 말은 아예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외모’나 ‘능력’에 대한 말은 그만큼 민감하고 위험한 주제입니다.

2년 전 미국의 한 상담사가 SNS에 올린 ‘30초 규칙(30second rule)’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규칙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상대가 30초 안에 바꿀 수 없는 외모(또는 능력)에 대한 언급은 하지 말자.” 예를 들어, 상대의 입에 고추장이 묻었거나, 셔츠에 점심 소스가 튄 것은 언급해도 됩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고, 손수건으로 닦으면 되는 일이니까요. 또한, “이 부분에 오타가 조금 있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와 같이, 즉시 수정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피드백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능력, 피부, 체중, 얼굴 생김새, 몸매처럼 ‘지금 당장 바꿀 수 없는 것들’은 굳이 입 밖에 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 ‘30초 규칙’은 단지 말 예절이나 매너에 관한 얘기를 넘어서, 우리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타인을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개념입니다. 특히 직장처럼 다양한 세대, 배경, 가치관이 뒤섞인 곳에서는 더더욱 중요하죠. 직장 내에서 외모에 대한 가벼운 농담이나 능력에 대한 무심한 평가, 말투나 태도에 대한 선입견 어린 언급은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성희롱이나 차별, 무시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가령 “너는 여자치고 너무 털털하다”, “왜 이렇게 이해력이 떨어지냐?”, “그 나이에 이 직급이면 좀 늦은 거 아니야?” 같은 말 역시 성 역할 고정관념이나 능력·연령에 대한 무시가 담긴 평가일 수 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은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성별, 외모, 신체, 능력에 대한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태도. 상대방이 어떤 경험을 갖고 있을지, 어떤 콤플렉스를 안고 있을지 모른다는 전제를 갖고 말과 행동을 신중히 선택하는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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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예쁘다고 한 게 왜 문제가 돼? 칭찬인데?” 하지만 외모 중심의 평가가 반복될수록,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가 ‘보이는 것’에 국한된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 사람의 성과, 인격이 아닌 외형적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진짜 존중은 사라지고 맙니다.

직장에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하며 성과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동료이지, 서로를 평가하거나 꾸며주는 오락 프로그램 속 출연자가 아닙니다. 농담처럼 툭툭 던진 말이 실제로는 누군가에게 하루를 통째로 무너뜨리는 파편이 될 수 있습니다.

‘30초 규칙(30second rule)’은 쉬우면서도 강력한 실천 도구입니다. 말을 하기 전, 딱 3초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내가 하려는 이 말, 상대가 30초 안에 고칠 수 있는 걸까?” 아니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배려입니다. 그것은 존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가 더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됩니다.

직장은 효율만큼이나 관계가 중요한 공간입니다. 서로의 외모나 비하적인 능력평가를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외모가 아닌 말의 온도, 시선의 방향, 귀 기울임의 태도가 결국 사람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그날의 기분과 자존감을 흔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우리가 건네는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뜨릴 수도, 지탱해줄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며 살아봅시다.

Profile
설진미 삼정KPMG 전임 심리상담사

성균관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고려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으며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임상심리실에서 슈퍼바이저로 경력을 쌓았다.

현재는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10년간 일하며 심리상담, 조직컨설팅, 강좌 및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개발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조직에 속한 직장인들을 만나 삶의 불안과 고통, 갈등을 성찰하고 성장을 모색해 왔으며, 조직문화를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