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장군 (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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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회식 때 건배사로도 많이 쓰이는 사자성어 중에 ‘우문현답’이 있다. 이 말은 “우리의 문제는 현장(現場)에 답이 있다”란 거다. 전문가란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모든 문제는 현장을 모르고서는 풀리지 않는다. 한심한 탁상행정은 현장과의 괴리에서 배양된다.

원래 ‘아는 게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영어 표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book-smart(책으로 배움)’이고, 다른 하나는 ‘street-smart(세상 경험으로 배움)’이다. 실제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절실한 지식은 바로 현장에서 배운 것들이다. 알고 보면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안다’의 반대말은 ‘모른다’가 아니라 안다는 착각이다.

# 현장의 소리

현장경영의 진수는 있는 그대로의 현장의 살아있는 소리를 듣고 그 즉석에서 해결하는 데 있다. 과거 GE의 타운미팅이 그 전범 사례다. “Walk the Talk”는 이와 관련해서 품질경영(TQM)에서 자주 써온 경구다. 있는 그대로 현장을 보라, 살아있는 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보고 듣는 것에 그치지 말고 직접 체험해서 느끼라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뉴욕대 폴 로머(Paul Romer) 교수는 혁신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을 찾기 위해선 현장 지식이 가장 중요하다며, ‘직장이 학교(Work is school)’라고 했다. 다만 학교는 돈을 내고 배우는 곳이지만, 직장은 돈을 받고 배우는 고마운 곳임을 알아야 한다.

실용 국가 일본은 물건을 만들 때 혼(魂)을 넣어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모노쯔꾸리(物作り; ものづくり)’ 전통을 가진 나라다. 과거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요리 만화, <쇼타의 초밥>은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일본 장인정신의 상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스토리는 초밥 요리사의 아들 세키구치 쇼타가 거대 초밥 회사의 횡포 아래 가난하게 살다가 도쿄 명품 초밥점에 들어가 최고의 초밥 요리사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일본에는 100년 이상 역사를 지닌 기업이 3만 8,000여 개, 1000년 이상 된 기업이 무려 7개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매우 높다. 이에 반해 우리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한국판 카스트 제도의 유산으로 인해 스스로조차 ‘공돌이’ 운운하며 자신을 비하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알고 보면 ‘공(工)’이란 글자는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는 굉장한 의미를 가진 글자인데도 말이다. 또한 누가 뭐래도 오늘날 한국을 10대 경제 대국으로 만들어 낸 1등 공신은 바로 ‘공(工)’과 ‘상(商)’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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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든 챔피언의 비결

한편 글로벌 강소기업의 나라, 독일의 모든 경쟁력은 현장 마이스터(Meister)의 손끝에서 나온다. 특히 이 나라에선 현장을 모르면 학계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고 한다.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에 따르면 전 세계 2,700여 개 히든 챔피언 중 독일 기업은 1,300여 개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가전업계의 벤츠인 밀레를 비롯하여 필기구 왕국 파버카스텔, 광학 렌즈의 선도 칼자이스 등 수백 년 역사를 가진 기업들이 즐비하다. 예컨대 세계적인 명품에 쓰이는 단추의 제왕, 프륌(Prym)의 설립 연도는 1530년으로 무려 500년에 가까운 기간이다. 모두 제조업 강국 독일이 자랑하는 히든 챔피언이자 ‘미텔슈탄트(Mittelstand·중소기업)’이다.

이들이 오랜 세월 세계를 주름잡는 비결은 무엇일까?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독일인 특유의 근면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작업지시서의 이행, 글로벌 전략 등을 꼽는다. 특히 중요한 것이 현장 전문가를 중시하는 문화다. 독일어로 직업인 ‘베르푸(Beruf)’는 영어의 ‘직업(job)’과 ‘소명(calling)’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직업을 단지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받은 소명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More Boots, Less Pants.” 양복을 벗어 던지고 작업화를 신고 현장에 나가라. 최고의 의복은 작업복이고, 최고의 장군은 현장(現場)이다.

이 교수는 매우 다양한 경력을 거친 국내 정상급 경영평가 전문가이며, 스타 강사로도 유명하다. 또한 베스트셀러, 『생각의 차이가 일류를 만든다』 저자이자 교보 광화문글판 선정(2022년) 작가이다. 현재 조선일보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두줄칼럼」은 삶과 일에 대한 인사이트, 아이디어 및 최신 트렌드 등을 불과 ‘두줄’로 풀어낸 국내 최초의 독창적인 초미니 칼럼 (부제: Think Audition)이다. 내용은 주로 인문과 경영의 융복합 구성이며, 생각근육을 키우고 마음의 울림을 느끼게 하는 지식과 사색의 아포리즘 결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