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너무 사랑하는 자기애.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푹 빠져 비현실적일 정도로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편이다. 그에 비해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면에 자기애가 가득 찬 사람도 있다. 바로 내현적 자기애인데, 이번 호에서는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자기애에 대해 살펴본다.
가스라이팅 용어가 사람들 사이에 일반상식 수준으로 널리 통용되면서 덩달아 ‘나르시시스트 (자아도취자, Narcissist)’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자기애가 과도한 자아도취자들은 자신의 외모, 능력, 가치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기대를 가지고 있기에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상대방 얻기 위해 가스라이팅이라는 방법을 핵심적으로 쓰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상대로부터 많은 것을 착취하는 자아도취자들의 가족, 동료, 친구들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상당하고, 이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꽤 많아 온라인상에서도 ‘자아도취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자아도취자와의 대화법’ 등의 다양한 주제의 글과 영상들이 넘쳐난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자아도취자들은 사회적 장면이나 대인관계에서 행동이나 말투가 두드러지는 편이라 그 존재를 알아채기 어렵진 않다. 그들은 ‘내가 최고야, 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내뿜기 때문이다.
반면, 쉽게 잘 드러나지 않는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도 있다. 내현적 자기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최고여야 하고, 내가 가장 인정받아야 하는 유아기적인 욕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이고 회피적인 방향으로 꽁꽁 숨겨둔다.
병리적인 수준까진 아닐지 언정,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은밀한 자기애적인 소망을 품고 있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나만 가장 특별하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서까지 우월감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 이런 자연스러운 자기애적인 소망들이 꽁꽁 숨겨져,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형태로 세련되게 나타난다.
내현적 자기애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대놓고 과시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상대방에게 찬사를 요구하지 않기에 심지어 겸손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겸손하기까지 한 내 모습’에 깊이 몰두되어 있는 것이 내현적 자기애의 특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적극적인 방식은 아니어도 자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려다 보니 겸손하게 보이려 하지만 그 행동에 진심이 결여되어 있거나, 상대를 배려하는 듯하지만 결국 자기중심적인 대화를 하거나, 자신을 향한 충분한 찬사를 주지 않으면 상대를 무시하는 등의 대인관계 특이점을 보이게 된다.
드러나든 숨겨져 있듯, 자기애 성향은 한편으로는 대인관계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건강한 성장을 위한 씨앗으로서의 자기애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서 타인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백설공주 동화의 마녀에게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예쁘다’고 말해줄 거울 같은 존재로 주변 사람들을 도구화해서는 건강해질 수가 없다. 더불어 대인관계에서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서로 가치 있는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호호혜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유아기적인 자기애 환상을 품었던 시기를 지나, 가장 생산적인 성인기에는 풍요로운 자기애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해서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가치 또한 존중할 수 있을 때 성숙한 자기애가 자리잡을 수 있다. 현실의 나와 이상 속의 나를 구별하되, 여전히 나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진정한 자기애 말이다.
최은영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기업과 사람의 정신건강을 위해 마음으로 다가가는 기업정신건강 힐링멘토.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그 직후에는 심리진단, 평가 영역에서 경력을 쌓았다.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업무뿐 아니라 다양한 심리적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주로 기업 내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 현장에서 발로 뛰어왔다. 다수 대기업, 공공기관, 외국계 기업에서 상담, 위기 개입, 교육을 진행했고, 근로자를 위한 정신건강 관련 글을썼다.
현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전임상담사로, ‘CIM Care Program’에 참여해 삼정KPMG 구성원들의 스트레스 관리 및 마음 치유를 위한 상담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