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은 관찰을 낳고 관찰은 관계를 낳는다. 동양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관계론이다. 관계(關係)란 세상의 본질이다. 통상 인연법으로 불리는 업보론 또한 관계 속에서 정의되어진다. 인간에서 ‘간(間)’이란 글자는 바로 관계를 의미한다. 우간(牛間), 견간(犬間)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인생에서도 가장 어렵다고 하는 게 인간관계다. 고 신영복 교수는 마지막 저서 『담론』에서 인간관계론의 최고 형태로서 겸손에 대해 설명한다. “주역에서 발견하는 최고의 관계론은 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변방입니다. 앞의 네 가지의 덕목은 그것이 변방에 처할 때 최고가 됩니다. 변방이 득위(得位)의 자리입니다. 이 네 가지 덕목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단연 겸손(謙遜)입니다.”
감사가 하늘을 만나는 방법이라면, 겸손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이다. 겸손(humility)의 어원은 인간의 본성인 흙을 뜻하는 라틴어 ‘휴머스’(humus)에서 유래한다. 한자로 보면, 겸(謙)은 말(言)을 많이 하거나 떠벌리지 않고 속으로 거둬들이는 모습으로 이것이 겸손의 출발임을 보여준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겸손에 대해 자신을 낮추는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겸손은 자신을 낮추기보다는 상대를 높이는 데 방점이 있다. 이는 한비자의 ‘마른 연못의 뱀’ 학택지사(涸澤之蛇) 고사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잘 나갈 때 겸손한 게 중요하다. 정치권에서 90도 폴더 인사는 배신의 예비 행위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겸손의 어머니는 자신감이다.
내공이 없는 사람의 습관적인 고개 숙이기는 일종의 비굴이다. 그리 본다면 겸손의 반대는 교만(驕慢)이 아니라 무지(無知)라고 할 수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에 닥쳐올 위험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우는 어떤가? 경영학에서는 초우량기업의 자격을 관계의 품질(QoR: Quality of Relationships)로 따져서 평가한다. 요컨대, 위대한 직장(GWP: Great Workplace)이란 3가지 핵심관계, 즉 상사-업무-동료와의 관계가 우량한 조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매년 미국 포춘지가 발표하는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의 평가기준으로 쓰이고 있는 상사와의 신뢰(Trust), 업무에 대한 자부심(Pride), 그리고 동료와의 즐거움(Fun)이 그것이다. 상사는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고, 내 자부심은 땅에 떨어진지 오래며, 팀원들은 꼴도 보기 싫다면 출퇴근은 무의미한 상황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전쟁과 문명』에서 역사적으로 숱한 국가의 멸망 원인에 대해 ‘휴브리스(Hubris)’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는 왕이 자신의 권력에 도취한 나머지 신과 맞먹으려 했던 오만을 뜻하는 그리스어 ‘hybris’에서 유래한 용어다. 역사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드문 이유는 자신만의 탁월성(Arete)과 성취에 매료되어 대부분 교만이란 덫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문학사에서 세익스피어에 이어 영국 작가 No.2로 평가받는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에서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는 명문장을 탄생시켰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절대 묵언을 지켜야 하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딱 한 가지 허용되는 말, 그리고 과거 로마의 전쟁 영웅이 개선 행진을 할 때 반드시 외쳐야 했던 이 말은 “당신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리더가 반드시 새겨야 할 겸허함이 깃들어 있다.
지금(Now) + 여기(Here)가 합쳐지면 ‘Nowhere’가 된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요절한 영화배우 제임스 딘의 말이다.
이 교수는 매우 다양한 경력을 거친 국내 정상급 경영평가 전문가이며, 스타 강사로도 유명하다. 또한 베스트셀러, 『생각의 차이가 일류를 만든다』 저자이자 교보 광화문글판 선정(2022년) 작가이다. 현재 조선일보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두줄칼럼」은 삶과 일에 대한 인사이트, 아이디어 및 최신 트렌드 등을 불과 ‘두줄’로 풀어낸 국내 최초의 독창적인 초미니 칼럼 (부제: Think Audition)이다. 내용은 주로 인문과 경영의 융복합 구성이며, 생각근육을 키우고 마음의 울림을 느끼게 하는 지식과 사색의 아포리즘 결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