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존재, 가족! 건강한 가족의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이번 호에서는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가족 간의 대립할 수 있는 갈등은 무엇이 있을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가족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보려 한다.

대인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이라고 했다. 그런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존재가 있다. 그것은 가족이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과도한 요구를 하는 부모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분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 부모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해 그 분의 일상이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고, 무엇보다 부모로 인해 그 분의 현 가족 구성원들의 고통이 컸다. 상담자로서 그 분에게 “고생하며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보답하기 위한 마음은 너무 잘 알겠으나, 이제부터라도 부모님과 조금 거리를 둬 보는 것이 어떤지요”라고 권했다. 그 분은 몹시 놀라며 “어떻게 부모님과 멀어지라는 말입니까? 천륜을 끊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라고 답했다.

이 사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유독 가족과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해 자책감을 느낀다. 할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부모는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와 같은 말은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에는 가족과 자신의 완전한 분리가 어려운 정서가 숨겨져 있다. 자식의 배부름과 부모의 배부름이 똑같은 것이 아니고, 부모의 기쁨이 나의 기쁨과 동일한 것이 아님에도 가족 간에는 서로의 욕구와 만족감, 실망감이 뒤섞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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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고 싶으면서도 멀어지고 싶기도: 분화

가족치료 이론을 정립한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은 가족 구성원들은 정서적으로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서로 의지하려는 마음(연합성)과 동시에 홀로 독립해서 지내려는(개별성) 두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고 봤다.

당연히 이 두 마음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이상적이다. 가정 내에서 한 개인으로 성장해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 독립하는 것을 ‘분화’라고 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분화되었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에 따라서 결정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고 비록 예민한 기질을 가졌더라도 감정적 충동을 조절할 수 있다.

반면에 가족으로부터 완전한 정서적 분리, 독립이 어려워 지극히 가족 의존적으로 살거나 혹은 가족과 관계를 단절하는 것을 ‘미분화’라고 한다.

가족은 애초에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능적 집단이 아니고 다분히 감정적 집합체이다. 그런데 이 감정덩어리 가족으로부터 건강하게 분화되지 못했다면 일상에서도 합리적 의사결정이 어렵고 감정조절과 관련된 문제를 빈번하게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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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독립과 분화가 어려웠다면

자녀가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독립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강압적인 부모로부터 과도하게 통제받고 자율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자랐다면 자녀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신뢰하기가 어렵다. 혹은 부부의 잦은 다툼과 갈등을 목격한 자녀에게 엄마가 계속해서 아빠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다면, 자녀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빠를 바라볼 수 있는데 이것 또한 독립과 분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부모의 미숙함에 많이노출된 자녀일수록 정서적 독립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가족으로부터 정서적 독립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을 위한 방법이 있을까?

첫째,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기억하고, 나를 격려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도 나라는 것을 잊지 말자.

둘째,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 갈등을 겪을 때 여러 선택 지 중에 고민이 된다면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분리해서 생각을 해보자.

셋째, 가족이라는 그늘에서 지냈으나 그늘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양지와 그늘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만 길러도 독립이 한결 가벼워진다.

우리는 모두 가족이 있으나, 가족이 없기도 한 각자의 외로운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함께’ 하기에 참 소중한 가족이지만 결코 나와 가족은 ‘동일한’ 존재는 아니다.

Profile

최은영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기업과 사람의 정신건강을 위해 마음으로 다가가는 기업정신건강 힐링멘토.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그 직후에는 심리진단, 평가 영역에서 경력을 쌓았다.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업무뿐 아니라 다양한 심리적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주로 기업 내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 현장에서 발로 뛰어왔다. 다수 대기업, 공공기관, 외국계 기업에서 상담, 위기 개입, 교육을 진행했고, 근로자를 위한 정신건강 관련 글을썼다.
현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전임상담사로, ‘CIM Care Program’에 참 여해 삼정KPMG 구성원들의 스트레스 관리 및 마음 치유를 위한 상담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