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2. [한국경제]

[한경 CFO Insight]

김태용 삼정KPMG 재무자문부문 파트너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주주행동주의는 주식회사의 주주가 기업 경영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적극적인 주주 활동으로 비공식적 기업과의 사적 대화 등 주주 관여부터 주주총회를 통한 공식적 주주제안, 반대투표 캠페인, 위임장 대결 등 그 범주가 다양하다. 초기 우리나라에서 주주행동주의는 1999년 미국계 헤지펀드인 타이거 펀드의 SK 텔레콤 공격 등 외국계 헤지펀드·사모펀드 등을 중심으로 기업 매각, M&A, 기업지배구조 관행 개선 등을 요구하고 높은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튜어드십(stewardship) 코드를 준수하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주주권 강화를 중시하는 행동주의펀드 등 기관투자자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지닌 개인투자자들이 플랫폼을 중심으로 연대하거나 공개 주주서한을 발송하는 등 행사 주체가 다양화되며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상시적으로 변모 중이다.

전통적으로 주주행동주의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주식시장이 발달한 서구권을 중심으로 활발했으며,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영향력이 미미했다. 통상 해외에서는 기업의 실적이나 영업이 부진 시 행동주의펀드 등이 기업의 이사회·경영진의 교체, 영업 전략 검토, M&A 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개입해 왔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월트디즈니, 세일스포스, 스타벅스 등 대형 우량 기업들도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된 바 있다.
 

서구권 중심의 주주행동주의가 코로나19 이후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최근 일본과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2024년 기준 주주행동주의 대상이 된 글로벌 기업 1,028개 중 58%(592개)가 미국 기업이며, 그 뒤를 이어 일본(96개)과 한국(66개)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특히 주주행동주의의 타깃이 된 국내 기업 수는 최근 4년 사이 약 6.6배 증가하며 글로벌 23개 주요국 중 3위를 차지하는 동시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러한 변화의 주요 배경은 일본의 주주권 강화를 위한 제도 변화와 유사하게 우리나라 역시 2016년 스튜어드십 코드 제도 도입, 2020년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최대주주의 의결권 3%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 2024년 한국거래소 주도의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등 제도적 요인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아직 국내 주주행동주의가 성장기임을 감안할 때, 향후 주주행동주의 타깃이 될 국내 기업 수는 지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힘입어 최근 국내 주주행동주의 투자자들은 기업 내부 경영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낮은 배당률과 주주환원, 대주주 중심의 경영, 이사회의 견제 부족, 취약한 지배구조 등의 비효율성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상장회사협의회의 ‘2024년 정기주주총회 주주제안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24년 정기 주주총회의 주주제안 안건 154건 중 가결된 안건은 33건(가결률21.4%)으로 전년대비 가결률이 5.0%p 증가했다. 또한, 배당 외 자사주 소각 관련 정관 변경이나 자사주 취득·소각을 통한 주주환원에 대한 주주제안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주제안 안건을 상정한 41개 기업 중 39개사의 주주제안자는 소액주주연대(19개사), 행동주의펀드(8개사), 기타(12개사)로 구성됐으며, 기업이 주주제안을 수용해 이사회안으로 상정하거나 최대주주가 주주제안에 찬성·가결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주주행동주의가 주주친화정책의 강화, 기업 경영 효율화,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등을 요구하며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높이는 긍정적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장기투자를 지향하는 연기금과 달리 행동주의펀드 등은 적극적 경영 개입 후 기업 주가 상승을 통해 시세 차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라는 차이점을 지니기에 중장기 미래 투자 기회 대신 과도한 배당이나 자사주소각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경영권 불안을 야기해 기업의 경영권 방어 비용을 과도하게 발생시킬 소지도 있다. 일부 사례에서는 행동주의펀드가 경영권이 불안한 기업에 개입해 분쟁을 더욱 확대시켜 기업의 유무형 가치를 훼손하거나 시장 불안을 초래하기도 한다. DART에 따르면, 2024년 한국거래소 경영권분쟁 공시 기업 총 88개사의 관련 소송 건수는 총 313건으로 2023년 266건 대비 17.7% 증가하며 5년래 최고치이다. 경영권분쟁 공시 기업의 70.4%(62개사)가 코스닥·코넥스 기업인 가운데, 최근 들어 관련 소송에 휘말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도 증가세다. 기업규모에 관계없이 잠재적으로 행동주의펀드의 타깃이 될 소지가 높다. 또한,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 이익 극대화를 명분으로 한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이 오히려 그린 메일(경영권에 위협을 가해 프리미엄을 받고 단기차익을 추구하는 행위)로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주고 주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주주행동주의는 양날의 검이다. 주주행동주의 부정적 측면은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기업 저평가의 원인과 해결책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변화를 이끌어 낼 주주행동주의의 전문성과 책임감 및 투명성이 필요하다. 더불어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정부와 투자자의 지속적 관심과 인식 제고, 사모펀드의 투자대기자금을 통한 행동주의 투자 전략 수용, 소액주주 플랫폼 발전 등 향후 국내 기업에 대한 주주행동주의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은 주주행동주의에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해 기업과 투자자 간에 건전한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이에 자사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주주와의 소통 등을 강화하며 기업과 주주의 장기적 가치 제고 방안을 마련·실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포이즌 필(Poison Pill)'이나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과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작동하기 어려운 국내 현실을 고려 시, 기업은 우호주주 확보 등을 통해 안정적인 경영권을 바탕으로 주주 이익을 극대화되고 다시 그 이익이 기업에 투자되며 자본시장에서 미래 성장성을 인정받는 선순환 구조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