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2. [한국경제]

[한경 CFO Insight]

지동현 삼정KPMG 전무

 

지난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 라디오 토크쇼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선박이 필요하지만, 더 이상 배를 만들지 않는다. 어쩌면 새로운 방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11월 대선 승리 직후 밝힌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MRO(Maintenance·Repair·Operation, 정비·수리·운영) 분야에서도 양국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발언의 연장선으로 해석되며, 한국 조선업계의 미국 군함 MRO 사업 진출 기대감을 다시 한번 높였다. 최근 미·중 해상 패권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미국은 해군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함정 수와 건조 능력 면에서 중국과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동맹국이자 조선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과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며, 특히 MRO 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이 요구된다.

한국 조선업 또한 중국에 글로벌 1위 자리를 내준 이후, 지속 가능한 조선업을 선도할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서 MRO 사업 확장은 중요하게 평가된다. 한때 한국보다 뒤처졌던 중국 조선업은 정부의 강력한 기술개발 지원과 저가 공세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전 세계 수주량 점유율에서 중국이 71%를 차지한 반면, 한국은 17%로 하락하며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선별 수주 전략을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지만, 점유율 하락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국가 간 조선 기술 격차가 좁혀지면서 제품 차별화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MRO 산업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조선 MRO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유지·보수와 신조선 건조를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MRO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 친환경 규제와 디지털화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군함 MRO 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MRO 시장의 범위는 군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시장은 바로 민간선박 분야의 MRO 시장이다.

지난 몇 년간 호황을 누려왔던 해운시장에서 많은 선박 발주가 이루어졌고, 최근 그 선박들의 노후화 비중이 증가하면서 선박 수리 및 유지보수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글로벌 운항가능 선대 중 15년을 초과한 노후선박의 비중은 역대 최고 수준인 37.7%까지 상승하며 노후 선박 교체 사이클에 들어서고 있다. 그 외에도 선박 교체 시기를 약 25년 정도로 볼 때 현재 건조량의 50~70%는 2000년대 발주된 선박의 교체 물량으로 분석된다.

또한, 친환경 규제 강화도 MRO 시장 성장의 주요 요인이다. IMO(국제해사기구)는 2030년까지 탄소집약도를 40%,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100% 감축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2023년부터 환경 규제가 본격화되며, 신규 선박뿐만 아니라 기존 선박에도 친환경 설비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연료유 교체, 스크러버 장착, 엔진 부하 최적화, 부유식 저장·재기화 설비(FSRU) 등의 친환경 솔루션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선박의 디지털화 역시 MRO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다. 최근 해운업계에서는 디지털 트윈, AI(인공지능) 기반 예측 유지보수, IoT(사물인터넷) 센서 기술 등이 도입되며 선박 운영의 효율성과 안전성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선박의 실시간 상태 모니터링이 가능해져 고장 발생을 사전에 예측하고 최적의 정비 시점을 결정할 수 있다. 이는 정비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운항 중단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선박의 자동화 및 자율운항 기술이 발전하면서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및 사이버 보안 또한 MRO 시장의 새로운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선박 시스템이 점점 더 네트워크화되면서, 사이버 공격 위험이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관리와 유지보수도 필수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디지털화는 전통적인 기계·설비 중심의 MRO에서 데이터 기반 정비 및 소프트웨어 유지보수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향후 MRO 산업의 핵심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19세기 영국의 정치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기회가 왔을 때 즉시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이다."라고 했다. 새로운 성장이 필요했던 한국 조선업에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기회가 오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가 그 기회를 잡기 위해 행동할 준비가 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할 시점이다.